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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중의 역사 > 유래

高麗門下侍中信城府院君康公墓道紀念碑銘

公의 韓는 之淵이니 金紫光祿大夫左參贊諱時弼之子也라 當麗朝高宗遷都時하야 公이 以侍中으로 扈從而有大功하야 至忠烈王朝에 封爲信城府院君하다 及歿에 葬于升山下하고 建慈 福寺于局内하야 因爲願堂이러니 逮我國初하야 遷奠于廣福洞子坐之原하다 有一男富傳하니 既徑集賢院典翰하고 歷六世하야 有諱允貴允成允誼允暉允富六兄弟하니 皆以勳爵으로 顯榮이라 第二公允成은 是爲神德王后之考也니 贈象山府院君하고 我正祖大王이 特爲親華御製하야 命立碑於聖后私第舊基하고 以表之曰姓康而居於谷者-尚稱望族이라하니 鳴呼라 康姓之 國初에 無罪被禍하야 子孫이 逃散八方에 因作渡淮之橘하니 言念當時之慘况則臨渚에 自不勝惻然之感矣로다 今惟護養邱壟에 備置墓田하야 延綿香火하니 若花山舘後에 建設府院君堂하고 自官朔望致奠等諸般事實이 既爲昭载於神道碑面則不疊記也라 盖伏念當時勳爵之崇高와 德業之盛大는 可以輝暎百代而今於曠世之後에 遺蹟이 湮晦하고 子孫이 各在遠方하야 奉先之誠이 漸然踈弛하고 至于近年에 祭閣傾頹하고 偷塚重曡하야 遂爲野叟之所指點嗟歎이라 乃於載寧青龍派世烈이 奮發義憤하야 先出四百圓誠金하고 同郡清水里派明洙가 亦出一百圓誠金하야 因設宗約所於明洙之京城自宅하고 乃將墓所之如此急况하야 輪告於八域所在各派宗中하니 從兹而八域宗金이 應響齊到라 自寧邊派宗中으로 特有一千圓之損助하고 現居全州善山派在鎔이 有三百圓之特捐하고 載寧派致福과 及於現居平壤雲山派昌查가 各有一百圓之厚損하고 其餘各派宗中의 多少損金이 俱在損案하니 煩不記載矣라 丁卯秋九月에 祭閣重建之役이 皆得竣工하니 屹然高閣이 雄大華麗라 以寧邊派賢默과 載寧派維元은 有監督之勞功하고 北青派基煥과 寧邊派炳泰와 載寧派俊植이 亦各有專務之勞功이라 夫建設宗約所之三載에 以本所任員及各處來往宗人之寄宿供饋는 明殊가 全然無科需應하고 又况祭閣建築之日에 明殊가 荷掌貨之任하야 金四百五十圓을 從他出債하야 先擔入用而伊今時過事帰하야 衆心難合으로 同債額이 自帰於明洙之負擔也 而初無向人半点之慍説하니 較念世態하고 而叅量其事則德義之厚重을 伊今可見是人也로다 祭閣竣工之後에 各派宗人이 同心協力하야 前記疊埋命塜을 以爲這這掘去하다 以扶安居善山派性東이 特損二百圓金하야 買土献納하니其誠力도 亦可不朽於千秋矣리라 今夫墓所之肅清과 齋舍之增光이 如非世烈明洙之義憤所激이면 安得有今日之偉績耶아 且頃年山野實測之日에 以其子孫이 昧於時冝하야 廣福先壟이 至帰於他人之占有러니 適者에 載寧派致福載學과 端興派聖昌과 海州派乃善이 以爲同心血誠하야 仍令信原山地로 依舊奉完하니 惟其功烈이 誠可特著矣라 墓徑一 片石은 寔公十三世孫善山派諱顗가 豊川府使在任時에 其所營竪者而歲久年深으로 石面苔蝕하야 字劃을 難辨矣라 以寧邊派基範이 大發誠心하야 巡回關西各宗中하야 熱心勸諭하야 收合誠金하고 安州派再玉이 亦爲熱心協助하야 墓所之石儀를 亦爲一新俱全하니 以關西諸宗之奪發誠意는 實賴基範賢勞之力也오 旦墓庭 ᅳ雙望柱石은 是松禾宗中之自發献誠者也라 鳴呼美哉라 信原宗事가 至此次第 并振하니 其於子孫에 可謂能事畢矣라 此足以爲闡發先徽하고 貽謨後昆故로 特錄而遺後하야 以爲永世鑑戒焉하노라 銘曰仁深澤遠에 餘慶이 大昌이라 隆生神德에 開國顯光이라 蔚彼廣福은 哲人收藏이라 自官致存에 有嚴王章이라 星霜屢遷에 世道顔荒이라 慈孫奪發하야 尊衛盡誠하니 齋所一新하고 石儀更成이라 於萬斯年에 永垂苦名하리라 聖誕二千四百八十六年乙亥七月日資憲大夫前議政府贊政侍講院詹事閔丙漢 撰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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