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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중의 역사 > 역사속인물 > 강후진(康侯晉)
康侯晋 號 태평산인(太平散人)의 생애(生涯)와 저술(著述)에 대하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이신 허흥식(許興植)님께 감사의 말씀을 먼저 드립니다. 앞으로 康侯晋(태평산인)의 함자를 호 "태평산인" 이라 이름할 것입니다. 허흥식 교수께서 논문으로 발표한 글을 몇해 전에 대종회종보에 기재하여 소개한 바 있었지만 정작 돈암공(遯庵公)의 후손인 우리들은 잘 알지 못하고 있었으며 또한 잘 알리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었고 알려야 할 기회도 없었으나 이번 종보를 발간하는 과정에서 충의공파 홈페이지를 개설하는 쾌거를 이용하여 자랑스러운 우리 집안의 인물을 소개하게 되었음을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으로 여기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게재하게 되어 그 기쁨이 배가 되었습니다.

이 글을 게재하고 있는 저는 저의 조부(世榮號:熙川)님께서 태평산인이 저술한 책들과 기행문 등 행적과 황해도 신천의 구월산의 중시조 묘소와 묘향산을 거쳐 중국에까지 다녀오신 길을 따라서 제작하신 지도 등을 보여 주시었고, 와유록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한국의 성씨에 관한 기록과 전주이씨 시조인 이한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신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공께서는 관직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아니라 선비의 집안에서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벼슬아치들과 교류하시면서 생각과 행동 등을 감영록鑑影錄}을 통해서 비교하셨고, 와유록(臥遊錄}을 통해서는 가장 낮은 곳에서 세상을 관조하셨다고 합니다.와유록을 흔히 누워서 편안하게 노는 모습이라고 하는데 공께서는 가장 낮은 곳에서 위까지 보는 것을 의미했다고 저의 조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공께서는 조선의 거의 모든 지역을 유람하시면서 기행문을 남기셨는데 익산의 왕궁터에 있는 백제 석탑에 대해서도 기록으로 남기셨는데 이를 바탕으로 KBS의 역사스페셜에 방영된 바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왕궁석탑은 일제가 복원하면서 훼손을 심하게 하였기 때문에 몇층으로 되어있는 석탑인지를 아직까지도 정확하게 밝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태평산인께서 저술하신 귀하고 보물과도 바꿀 수 없는 책들과 지도를 잘 보관 관리를 했어야 함에도 지켜내지 못한 못난 후손이어서 부끄러울 뿐만 아니라 소중한 역사를 잊어 버렸음에 죄책감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렇게 귀중한 책과 지도를 분실한 사유를 궂이 변명하자면 저의 조부님께서 상기 언급한 책들을 1960대 중반까지 용장의 야은정(野隱亭)에 잘 보관 관리하셨지만 야은정에서 저의 조부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서울로 이사를 하면서 포장하여 선반에 거처하였으나 야은정 현판인 심여수(心如水)와 저의 증조부(鐘奎 號 野隱)님께서 가선대부승차시에 하사받은 일산(日傘)을 모두 함께 분실하였습니다.

이 창을 통해서 태평산인께서 저술하신 책들과 지도를 잊지 않으시고 관심을 가져 흩어져 있는 귀한 책들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같은 마음으로 야은정 현판과 일산도 무심치 마시고 관심을 가져 준다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현 돈암공파 회장이신 윤환(尹煥)형님께서 분실한 일부인 화이잡록을 기본으로 하여 여타의 저술들을 발굴함과 동시에 태평산인께서 기록으로 남기신 의도와 행적, 시대상과 종교와 풍습 등 다양하고 깊이 있고 폭넓게 조명하여 주었기에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7년 3월 10일 37세 龍庄 : 東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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康侯晉의 生涯와 저술

- 한국학대학원 許興植 교수

머리말

1. 康侯晉의 家系와 生涯

2. “鑑影錄”과 “纂輯鑑影錄”

3. “類撰華夷雜錄”

4. 그 밖의 저술과 그의 史觀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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