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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중의 역사 > 시조/영정

[중화강씨 시조 강숙]


무릇 氏族族譜保存하는 것은 世系 歷史를 걱정하면서 傳承하기 編纂하는 것 이다。舊譜歲月이 오래됨으로 마땅히 增譜하여 지금의 康氏 修譜를 하게 된 것이다. 어느 날 法制室長 康明玉 同志來訪하여 우리의 族譜 目的은 오직 系代를 밝히고 여러 릍 이룬 여러 宗人을 함께 수록함으로써 世交릍 돕고자 한다고 하기에 내가 辭讓하였으나 懇請함으로 손을 씻고(盥水)하고 譜冊閲覽하니, 康氏周武王의 아우를 康叔으로 하고 그분의 第ニ子 詩 侯께서 처음 朝鮮에 살게 되었으며 國政助成하고 國政勳勞가 많을 뿐만 아니라 箕子의 아름다운 盛德으로 關鼎大勳功臣으로 하였으니 그때 諡康叔康字賜姓하였다이로부터 해오기를 百十餘 世代에 이르도다. 諱啣(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諱啣이라 한다)確實(歷曆)하고 밝게 실은(昭載) 것이 멀리서(源遠流長)부터 근원이 되어 빛나게(煌煌) 내려왔으니 他姓들의 族譜에서 미처 보지 못한 것이로다.

新羅朝 聖骨將軍 公虎景이니 이분은 하늘의 도움을 받은 분이며 王氏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高麗 侍中公 諱 之淵高麗王朝輔弼하면서 信城(信川古號)으로 子孫들의 贯鄉을 삼으니 이는 箕子 新羅 高麗에 이어지기까지 康氏昌大하였다. 그러나 史籍으로는 그저 많이 傳來해 오지 않았다. 朝鮮朝 太祖 英祖 正祖 高宗 네 분(四聖)御書I冊 卷頭에 담은 것을 보니 列聖(여러 임금)寵愛가 얼마나 컸는지 想像하기 어렵지 않다. 忠孝, 行誼, 文章과 벼슬길에 나간 이가 많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世德의 탓이리라.

康氏本貫信川이나 한편 本貫을 다르게 하는 이들도 많다. 이번에는 單一譜로 하는데 이를 돌아보면 單本睦族之義로 이 譜牒宗族을 한데 모으고 옛 風俗을 두터이 할 것이다. 이를 보고 感歎치 않으랴 興起하리라. 나라가 兩斷되어 쪽의 宗親들과 함께 族譜를 하지 못함은 이 時代運所致이니 彼此(南北宗親을 이름) 恨歎하는 바이리라.

本世譜康門會 大宗總會를 열어 神德王后 貞陵에서 決議하여 譜所設置하고 연기군 御書閣에서 譜事運營한 지 이제 三年이 되었으니 큰일에 힘써온 하지는 않았으나 다시 大宗會總會에서 信川康氏 世譜編纂委員會構成 任員 相互合心하여 함께 役事함으로써 여러 宗親所望을 이루었으니 이 어찌 아름답다 아니 하리요. 어허 옛날 程氏(程頣)明譜와 이번 康氏修譜가 서로 같을 것이니 사람의 道理合當하도다.

譜冊閲覽하는 진실로 良心孝敬의 생각이 있음이리니 自然世世感發하고 派派譜牒继編함이 譜牒마다 備置한 것인즉 宗孫支次系統하고 날이 갈수록 同族親善自然強化되리니 이는 國家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으며 이에 하노라

擅紀 四千二百九十年 丁酉 十二月 上浣
(西紀 一千九百五十七年)

大法院長 蔚山 金柄魯 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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