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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중의 역사 > 시조/영정

[중화강씨 시조 강숙]

계유보 서문 해석

동 균
돈암공파 37세
대종회 부회장
(전)기업인

이 글을 싣게 됨은 본관을 다르게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대종회 총회를 거쳐서 족보를 편찬하면서 신천을 본관으로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초대 사법부의 수장(首長)이신 김병로 선생께서 서문을 작성했음에 주목(注目)하였음은 우리나라의 수많은 성씨 중 삼권(三權)이 분립(分立)된 국가에서 그 수장께서 서문을 작성(作成)했음은 우리 신천강씨의 홍복(洪福)이라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夫氏族之譜何爲也憂世系歷事之失其傳而編也舊譜世久增補固宜而今於康氏修譜見之矣一日康君明玉甫來訪曰吾譜目的惟在於明系詳派以立人紀萬宗同錄以扶世敎云請余序之余辭不得盥手閱譜康氏周武王弟康叔封之第二子諱候始居朝鮮助成國政多有勳勞箕子嘉其盛德封關鼎大勳功臣其時以父諡康叔之康字賜姓至百十餘代諱啣事實歷歷昭載是源遠流長之煌煌他譜之所未見者也新羅朝聖骨將軍公諱虎景受天之佑易啓王氏之基高麗朝侍中公諱之淵輔弼麗宮而食采於信川子姓因以爲貫於箕於羅於麗康氏之昌大史籍之所癥也我 太祖 英宗 正宗 高宗四聖御書冠其首篇列聖所以寵異之典人不可想像又見其忠孝行誼文章顯爵則尤徵其世德之風矣康氏本貫信川也而外有異貫之多今回一譜是顧本睦族之義也於戱斯譜實所以收宗族而厚風俗孰不觀感而興起也哉國土兩斷北不同譜是時運所致而彼此所恨也本世譜康門會開大宗總會於 神德王后貞陵合修譜之決議設譜所于 御書閣譜事營爲于今三載事鋸力綿功未告竣再開大宗總會新構信川康氏世譜編纂推進委員會役員相好合心同役以成衆宗之所望豈不美哉嗚呼昔有程氏之明譜今有康氏之修譜彼此相似也以該當人道覽此譜者苟有良心孝敬之思自然感發世世繼編此譜派派備置譜牒則宗支系統之傳去益長明同族親善之誼自然强化庶幾有補於國家矣遂爲之序
檀君紀元四千二百九十年 丁酉 十二月
上澣蔚山 金炳魯 序

무릇 씨족의 족보를 보존하는 것은 대를 이어 온 역사를 걱정하면서 계통을 전하여 계승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만든 것이다. 예전의 족보는 세월이 오래됨으로 마땅히 보충하여 지금 강씨의 수보(족보)를 하게 된 것이다. 어느 날 법제실장 강명옥 동지가 찾아와서 우리의 족보의 목적은 오직 계대를 밝히고 여러 파를 이룬 여러 종인을 함께 수록함으로써 세교1)를 돕고자 한다고 하기에 내가 사양하였으나 간청함으로 손을 씻고 보책(족보)을 열람하니 강씨는 주무왕의 아우 강숙(왕의 숙부)으로 봉하고 그분의 둘째 아들 이름 후께서 처음 조선에 살게 되었으며 국정을 도와서 이루게 하고 국정에 큰 공로가 많았을 뿐만 아니라 기자의 아름다운 성덕으로 관정2)대훈공신으로 봉하였으니 그때 부친의 시호 강숙의 강자를 사성3)하였다. 이로부터 전해오기를 일백십여 세대에 이르렀다. 휘함4)(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휘함이라 한다)이 역력(분명하고 또렸함)하고 소재(뚜렷하게 실려있다)는 원원유장5)하니 빛나게 밝히면서 이어져 왔으니 다른 성씨들의 족보에서는 미처 보지 못한 것이로다.

신라의 성골장군 공의 이름은 호경이니 이분은 하늘의 도움을 받은 분이며 왕씨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고려 시중공 이름 지연은 고려왕조를 보필(임금을 도움)하면서 신성(현 신천)으로 자손들의 관향(본관)을 삼으니 이는 기자조선 신라조 고려조에 이어지기까지 강씨가 창대(세력이 번창하고 왕성함)하였음 이다. 그러나 사적(역사의 기록)으로는 그저 많이 전하여 내려오지 않았다. 조선조에서 태조 영종 정종6) 고종 사성7)의 어서(임금의 글씨)를 족보의 첫째권에 담은 것을 보니 열성(여러 임금)의 총애(특별하게 사랑받음)가 얼마나 컸는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 충성스러움과 부모에 대한 효도와 품행은 의리에 맞는데도 문장과 벼슬길에 나간 이가 많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대대로 쌓아 내려오는 아름다운 덕의 탓이리라.

강씨의 본관은 신천이나 한편 본관을 다르게 하는 이들도 많다. 이번에는 단일하게 족보를 제작하는데 이를 돌아보면 단일 본관의 동족끼리 화목하게 지내는 것을 올바르게 생각하니 이 보첩은 진실로 종족(동성동본)을 하나로 모으니 옛부터 내려온 풍속을 두텁게 하고 누구나 이를 보고 감탄치 않으리요 흥기(감동하여 떨쳐 일어남)하리라 나라가 양단(남과 북)되어 북쪽의 종친들과 함께 족보를 하지 못함은 이 시대 운의 소치(빚어진 일)이니 피차(남과 북의 종친)가 한탄하는 바이리라.

본 세보(족보)는 강씨 종문회에서 대종회 총회를 열어 신덕왕후 정릉에서 결의하여 보소(족보 편찬소)를 설치하고 연기군 어서각에서 보사(족보 작업)를 운영한 지 이제 3년이 되었으니 큰일에 힘써온 공로를 알리지는 않았으나 다시 대종회 총회에서 신천강씨 세보편찬위원회를 구성하여 임원들과 서로 합심하여 함께 역사(족보제작)함으로써 여러 종친의 소망을 이루었으니 이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리요. 아아 옛날 정씨8)의 명보(족보)와 이번 강씨의 수보(족보)가 서로 같을 것이니 사람의 도리에 합당하도다.

이 보책(족보)을 열람하는 자는 진실로 양심과 효경의 생각이 있음이리니 자연히 세세(대대로)에 감발(느끼어 마음이 움직임)하고 파파(각 파)가 보찹을 계편(계속하여 엮어나감)하여 보첩을 각 파마다 비치(마련하여 갖추어 둠)할 것인즉 종손(종가의 대를 이을 맏손자)과 지차(종손 이하)의 계통을 전하고 날이 갈수록 동족끼리 서로 사귀어 더욱 친하게 됨을 자연스럽게 강화되게 한다면 이는 국가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믿으며 이에 서(요지를 기록)한다.

서기 1957년 12월 상한(초순)
울산 김병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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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교(世交) : 선대(先代) 때부터 사귀어 온 교분(交分).
2) 관정(關鼎) : 관정의 뜻은 정부를 수립하는데 관련하여 행하였던 일.
3) 사성(賜姓) : 임금이 내린 성.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어떠한 경우에도 성을 바꾸지 않는 다는 성불역(姓不易)의 원칙이 있다. 왕조시대에 임금이 성을 하사하는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4) 휘함(諱啣) :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휘함이라고 한다.
5) 원원유장(源遠流長) : 아득히 멀고 오래되었다. 역사가 유구하다.
6) 영종 정종(英宗正宗) : 영종은 영조 정종은 정조인데 왕조 국가에서 사후에 붙여진 왕의 시호로 조는 국가를 창설하였을 때의 시호이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정상적으로 왕위를 이어받지 못한 경우로 영조는 경종의 동생으로 왕위를 이었고 정조는 영조의 손자로 왕위를 이어받았기에 종에서 조로 호칭 되었으며 군(君)으로 불리는 연산군과 광해군은 왕위 재임시의 불의(不義)함으로 붙여진 것임.
7) 사성(四聖) : 왕조 국가에서는 왕을 성인으로 불렀음. 즉 태조와 영조 정조 고종을 일컬음이다.
8) 정씨(程氏) : 본관 중국 하남으로 시조 우(羽)의 18세손 사조(思祖)는 노국공주(魯國公主)가 입국할 때 들어와 고려 충정왕 때 전중어사를 지냈는데 한국의 정씨 시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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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로(金炳魯)
1887년 12월 15(음)일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하리에서 사간원정언을 지낸 부친 김상희와 모친 장흥고씨 사이에서 3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호는 가인(街人)이다. 일제 강점기에 항일 변호사로 독립운동 관련 사건들의 변론에 주력했는데 주요 사건으로는 안창호(安昌浩, 1878~1938) 여운형(呂運亨, 1886~1947) 김상옥(金相玉, 1890~1923) 등에 대한 사건이다. 광복 후에는 초대와 2대 대법원장을 역임하며 입법부마저 권력의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자 정권을 견제하고 감시할 수 있는 사법권의 독립을 지키기 위하여 이승만 정부와 마찰을 빚기도 했던 법조인이자 정치가이다. 1963년 1월 13일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북한산 둘래길 2구간 순례길에 모시었다.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춘산리 716
TEL : 010-402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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